[예레미야 40:1-6] 1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5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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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과 불순종. 우리는 먼저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하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당장 내앞에 좋은 것에 편한것에 그 뜻을 두고 싶죠. 이 부분이 내 평생의 신앙적 고민입니다. 항상 주님안의 바른 선택과 순종으로 복을 받고 싶지만 내 이기심과 욕심은 항상 내 눈과 이성을 가려서 후회하게 만듭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더 많이 더 깊이 알기에 그리고 기도에 힘쓰게 하셔서 그에 근거하는 선택 순종하게 하셔서 늘 풍성한 복을 받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바벨론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유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포로를 바벨론으로 잡아갑니다. 그때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도 함께 잡혀갑니다. 바벨론으로 가는 중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포로된 예레미야를 불러 두 가지를 말합니다. 1) 이렇게 유다가 망한 것은 너희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 이 모든 재난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2절: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3절: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서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이방인임에도 바벨론 사령관은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된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2) 하지만 예레미야를 포로에서 놔 줄 것인데, 원하는데로 가라고 선택권을 줍니다. 4절: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주노니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이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바벨론의 사령관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선대하고 존중하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이며 선민이라고 하는 유다인들은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를 멸시하고 우습게 여겼지만 오히려 이방인이 그를 존귀히 여깁니다. 순종은 생각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주님께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이유는 주님께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순종을 잃어버리면 소금이 맛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에는 부끄럽게도 세상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선택의 기로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보장된 바벨론보다는 황폐하게 된 조국 유다로 다시 돌아가기로 선택합니다.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두렵고 불이익이 있고 손해보더라도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순종하고 선택하는 것이 생명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결정하는 것이 복된 길입니다. -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님께 순종하고 있습닊? - 나는 매순간 믿음으로 선택하고 결정합니까? 아니면 내 생각이 옳은대로 행합니까? 사랑의 주님, 내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이해: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들을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 예레미야도 잡혀 가게 된다. 사령관은 백성들이 불순종하여 끌려가게 되었다고 말하고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으로 가거나 좋게 여기는 곳으로 가리고 한다. 예레미야는 마지막으로 제안된 그다랴에게로 돌아가 유다에 남은 자들과 머무는 것을 선택한다. 묵상&적용: 바벨론의 부유하게 살 길도 자신의 원하는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남겨진 유다인들을 말씀으로 섬길 수 있는 사명의 자리로 다시 가는 예레미야. 예레미야의 선택이 말해주는 교훈이 크다. 과연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하였을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어려운 사명의 길을 안락한 삶을 뒤로 하고 택할 수 있을까? 대선자자 예레미야 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내게 그런 선택의 사항을 준다면... 아마도 나는 편안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부끄러운 생각을 해본다. 좁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사명의 길이 혹독하단 걸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다시 기로에 설 때 갖게 되는 유혹은 더욱 클 것이다. 성령안에 머물며 그 분께 시선을 고정하지 않는다면 정말 어려운 결정이 될 것이다. 룻이 떠오른다. 마다하고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는 길에서 오르바처럼 돌아가지 않는 룻의 결단과 모습...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주신 사명과 말씀의 자리에서 머물고 그 좁은 길을 선택한다. 오늘도 내게 주어진 사명의 자리가 만만하지 않다고 느낄 때 쉽게 가는 길을 선택하고 싶은 유혹은 주어지게 될 것이다. 주인이신 그 분께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드리고 사명의 그 자리을 묵묵히 지키고 가는 내가 되어야 하겠다. 그것은 온전히 주님을 매 순간 의지하고 바라볼때만 가능하기에 다시 말씀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기도: 주님 인간적이고 안일한 삶이 죄인의 길이 되고 임재가 없는 자리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두렵습니다. 거센 물살을 거스르고 올라가는 연어처럼 세상의 방식을 밀어내고 주님을 행해 나아가기 원합니다. 주어진 좁은 길은 노아의 방주와 같이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 만이 살 길임을 예레미야와 같이 알게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