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8:1-14] 1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2 그들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기업을 가지지 않을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으니라 3 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몫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소나 양이나 그 앞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4 또 네가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네가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 5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6 이스라엘 온 땅 어떤 성읍에든지 거주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가 사는 곳을 떠날지라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이르면 7 여호와 앞에 선 그의 모든 형제 레위인과 같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8 그 사람의 몫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그가 조상의 것을 판 것은 별도의 소유이니라 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10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11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12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14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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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의 거듭남의 시작은 뉴송교회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말씀으로 정금같은 믿음을위해 뉴송교회에서 훈련 받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생활의 노역으로 힘든 나날을 지낼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소망하는 레위지파인 모세를 통해 출애귭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그 다음 단계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경청하고 지키며 자손들에게 가르치는 말씀훈련을 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을 전할 자는 제사장의 역할을 갖고 있는 오늘날 교회에 목사님들임을 부정할수 없다. 이시대에 나에게 필요한 믿음의 성장이 필요한 부분은 어떠한것 보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방법이 세월을 아끼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이 뉴송교회를 사랑하시기에 교인들에게 말씀위에 서서 반석같은 믿음을 훈련 받게하시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제사장이 김신율 목사님이 실것이다. 이 팬더믹 기간동안 불확신한 미래에 많은 정보들로 두려움에 빠지기 쉽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증한 행동이나 신비주의에 빠질수 있음을 말씀에서 말하는것이 아닐까. 단순한 삶으로 변화하여 말씀 중심의 삶을 추구 할 따름이다. 말씀으로 성도님들을 잘 양육하실 목사님의 열정을 높이 사며 감사 할 따름이다. 주님, 영성이란 이름하에 잘못된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시며 말씀이 곧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나를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오늘은 레위인에 관한 말씀입니다. 레위인은 12지파 중에 땅을 분깃으로 받지 못하였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 한 분깃씩 나누어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에게 분깃을 주시지 않은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1) 레위 지파를 각 지파에 흩어지도록 하여 하나님이 기업이심을 나타내며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땅이 아닌 하나님이 기업이 되신다는 말씀에는 이 땅에서는 나그네요, 하나님이 진정한 공급자이며, 하나님의 부르시고 택하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는 땅의 분깃이 없으니 각 형제 지파 사이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각 지파는 자기 땅에 들어와 사는 레위인에게 충분히 살 땅과 공간을 주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정착한 레위인들은 각 지파로부터 거주할 곳을 얻어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각 지파의 마을마다 레위인들이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전체에 레위인이 없는 마을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레위인이 하는 직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다음 두 번째 이유입니다. 2) 레위인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가르치고 지키도록 하여 구별되고 거룩한 삶의 본을 보이며 살도록 하였습니다. 레위인은 항상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앞장서야 했기에 율법을 잘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선택하고 결정하고 살아가도록 백성들에게 조언하고 가르치며 또한 본을 보여야 했습니다. 5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구약에서의 레위인이 신약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요즘은 과거보다 쉽게 목소리를 냅니다. 누구나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민주적인 것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는 성경적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분명한 기준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다수가 찬성해도 하나님 말씀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 말씀의 기준에 대한 해석은 누구에게 권위가 있는 것입니까? 구약은 레위인에게 있었습니다. 레위인은 대대로 말씀을 배우고, 율법대로 살고, 철저히 훈련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교회는 어떠합니까? 혈통적인 레위인은 아니지만 그 안에 근본적인 개념은 동일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말씀에 대해 전문적인 신학 훈련과 배운 자라야 가능했습니다. 바울은 이미 바리새 교육과 함께 3년 이상 말씀에 대한 철저한 신학 훈련을 하였고, 디모데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였습니다. 민주주의 태동은 종교개혁자 루터에 기인합니다. 그가 처음 만인제사장론을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1523년 이후에 루터는 생각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토마스 뮌처의 급진적 종교개혁(1524년)과 독일농민전쟁(1525년)이 발발하기 전 까지만 해도 루터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말씀과 교리를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루터는 수년간의 전문적인 신학 공부와 철저히 훈련 받은 목회자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그 이후 만인제사장론이 오히려 교회와 사회에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이상적인 생각을 점차 바꾸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과 교리를 제대로 배우고 훈련받을 때 비로서 삶의 방향을 올바로 잡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분명 그 땅의 세속적인 생활양식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9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백성으로 살 길 원하셨습니다. 13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그리스도인이 가장 주의해야 하는 삶은 이중적이고 이원론적인 삶입니다. 말씀따로 삶따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은 주일에 교회에서만 듣고, 6일은 내 삶을 그냥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서 나는 구별된 제사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6일간 받은 세속적 영향력이 말씀과 기도로 정결하고 거룩하게 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면 마음과 생각이 굳어져서 교회는 나오지만 세속적 그리스도인이 되어 갑니다. 영국의 크리스쳔투데이에 '당신이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의 3가지 증거' 라는 칼럼에서 다음은 세속적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징조라고 합니다. 1) 영원한 이익 이상의 세속적인 이익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2)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힘이 없는 종교적 형태로만 교회에 다닌다. 3)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본주의적인 선한 도덕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점과 사주팔자를 보는 이유는 단 하나 부귀영화를 얻기 위함입니다. 점치는 것은 결국 우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대의 우상은 세속주의와 이기적 자기 중심사상입니다. 물질과 힘과 성공과 명예를 그리스도보다 더 의지하고 바라보고 원한다면 그것은 분면 우상입니다. 사랑의 주님, 날마다 주님을 바라고 더 가까이 하며 주님을 더 사랑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이해: 레위인은 여호와가 기업이시므로 가나안 땅을 분배 받지 못했다. 따라서 각 지파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야만 한다. 또 그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 사람들과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거나 길흉을 말하는 자(신접자)등을 용납하는 가증한 행위를 보게 되는데 그것을 따라 해선 안된다고 당부한다. 묵상&적용: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시는 레위인 제사장들에 대한 부양의무를 재차 명령한다. 또한 그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절대 해선 안되는 일. 즉 신접하거나 점치거나 길흉을 말하는 행위에 대해 용납해서는 안되며 그런 것은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신다고 언급하고 있다. 삶의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세상의 옳지 않은 일을 따르거나 그 습관을 갖게 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긴다고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만나고 앞일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 오면 인간은 쉽게 슈퍼파워를 가진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하고 가증히 따르고 섬기고 싶어한다. 요새같은 때는 바이러스에 대항해 건강에 좋다는 인포들, 어떤 것이 불안한 미래에 삶의 투자책일까 하는 것들로 스스로 점치며 골몰하며 시간 보내기 쉽상이다. 지난 두어 달 전 한국에서 마스크가 절실해서 약국에 줄을 길게 설 때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그 시기에 결혼 신랑감1위는 명문대 졸업자도 아니고, 대기업 취직자도 아니고 ..마스크100장 가진 사람이였다는 것이다. 넘 웃꼈지만 그만큼 결국은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현재 갑이 무엇인가를 찾는 인간의 허상을 보는 듯 하다. 본문에 열거된 가증한 행위를 하지않고 미혹받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노력의 대부분이 미래의 안전망을 위해 구축한 삶의 방식의 일색이다.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과 안전과 미래의 보장이 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요한복음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한다. 그럼 어떻게 자유케 될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이라고 또 말씀 하신다. 비진리의 말들에 거하는 어리석고 가증한 거짓된 행위를 버리고 참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안에 거해야 한다. 오늘도 나는 생명과 진리의 말씀에 거하여 살아가야 하겠다. 기도: 주 예수님, 오늘도 진리되신 주님안에만 거하여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