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9:1-13]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여러 민족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그것을 받고 그들의 성읍과 가옥에 거주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에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4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5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6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 7 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 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 9 또 너희가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의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이같이 하면 그의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11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상처를 입혀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면 12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복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13 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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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도피성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총 48개 성읍이 있었는데 그 중 도피성은 6곳을 택하였습니다. 요단강 동편에 3곳(베셀, 길르앗라못, 골란, 신 4:41-43)과 요단강 서편에 3곳(게데스, 세겜, 헤브론, 수 20:7-8)이었습니다. 요단강 동편은 이미 신명기 4장에 보면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가 정하였고, 서편은 본문 19장의 말씀대로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다시 명하여 3곳을 더 정하였습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전역 어디에서든지 32km 이내에 위치해 있기에 하룻길 안에 어디서든 누구나 도피성으로 피신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도피성으로 향하는 가는 도로는 폭이 14m 이상 넓게 잘 닦여 있는 포장도로였으며 길을 잃지 않도록 미클라트(도피성)라는 안내판도 곳곳에 설치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도피성과 관련한 말씀을 총 네 곳에서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신명기에서 두번, 여호수아에서 입니다. 이렇게 네 번 씩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셨다면 도피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도피성은 말 그대로 피신하는 곳입니다. 그 곳에 피신하면 어느 누구도 잡아갈 수 없습니다. 치외법권 지역인 곳입니다. 하지만 여긴 제한이 있습니다. 고의가 아닌 실수로 과오적인 살인을 저지는 경우 도피성으로 피신하면 살게 됩니다. 그러나 고의적인 살인이나 죄는 도피성에 들어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고의가 아닌 경우 실수는 비록 살인이라 할찌라도 용서하여 또 다른 무고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살인과 같은 실수는 정말 큰 잘못입니다. 사람은 이런 실수까지 저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실수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 본문처럼 어느 사람이 도끼로 나무를 패는데 도끼날이 빠져서 옆 사람의 머리에 날아가 맞아 숨지게 했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당한 사람은 또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도끼날에 맞아 숨진 사람의 형제나 친구들이 원한을 품고 실수를 저지른 도끼날의 주인을 동일하게 죽이는 일이 생긴다면 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을 통하여 거룩한 백성들이 어떤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1) 정확히 분별할 줄 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도피성을 다른 성읍과 구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상황에 대해, 죄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줄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말씀의 기준에 따라 사리 판단과 분별을 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살인이라도 다 똑같은 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정당방위도 있습니다. 과오적 살인도 있습니다. 내 가족이 다쳤다고 무조건 보복하는 것이 아닌 무슨 연유인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감정이 앞서기에 먼저 주먹과 칼을 들고 사람을 똑같이 해하려고 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기에 사람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도피성을 마련한 것입니다. 2) 도피성은 생명 존중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 하나도 아끼시는 분입니다. 한 생명도 가벼운 것은 없습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도피성에서는 누구나 살게 됩니다. 도피성에서는 왕이라 할찌라도 권력이 미치지 못합니다. 부자도 돈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도피성은 하나님의 주권의 보루입니다. 도피성이 무너지면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의 가치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도피성을 말씀하시면서 축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도피성에 권력과 물질이 통용된다면 사회는 부패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3) 도피성은 하나님의 긍휼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도피성에는 실수를 저지른 이웃을 용서하라는 메세지가 담겨있습니다. 원수갚는 것, 보복은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독 의분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나서서 자기가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얼핏 보면 의롭고 도와주는 사람같습니다. 하지만 억제하지 못한 감정때문에 저지르는 행동이 더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의분도 자칫 자기 의를 나타내게 됩니다. 사람에게 순수한 선한 의도는 거의 없습니다.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감정으로 어떤 행동을 저질렀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죄가 되는 것입니다.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놀라운 통로는 용서입니다. 용서라는 도피성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 때 우리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4) 도피성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곳입니다. 도피성에는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로 살인자와 같은 중범들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웃입니다. 그들과도 함께 잘 지내야 합니다. 이웃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그곳에서 나가면 인생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도피성에서는 어떻게 하든 용서하며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곳에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들어납니다. 사람을 미워하여 죽였는지 아니면 실수로 죽였는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내가 죽지 않으려면 용납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도피성은 꼭 예수님의 그림자 같습니다. 예수님 밖으로 가면 죽게 되고 안에 있으면 사는데 주님 안에서 살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는 바로 이런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미움이 있는 상태로는 예수님 안에 있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안식과 축복을 누리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 나는 주님 안에서 행복합니까? - 나는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사랑의 주님, 우리의 도피처가 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더 사랑하도록 용서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이해: 이스라엘백성이 주신 땅의 성읍과 가옥에서 거주할 때에 도피성 세 군데를 정해서 부지중에 죄를 짓게 된 자들이 그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는 명령이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인 경우 이 성읍에 도피하려 한다면 그를 보복자에게 넘기고 숨겨두지 말고 처벌하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그 땅은 긍휼과 자비와 공의의 땅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묵상&적용 우린 살다가 보면 불완전하여 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것에 대해 너무 과중하고 더 억울한 처벌이 따를 때가 있음을 본다. 하지만 때로는 죄의 본성을 가져서인지 정말 고의성을 가지고 가인과 같은 짓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당혹스러운데 경한 처벌이 따라서 죄가 더 만연해지기도 한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잘못된 판단과 정의의 이름으로 오도된 결정들이 어려움을 가져다 주기도한다. 잘못에 대한 댓가를 위해 자비와 긍휼의 도피성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주님께서 세 도피 성읍처럼 내 삶에 공동체 안에 서 계시니 두렵지 않다. 잦은 실수에도 죄에도 아직까지 믿음안에 뿌리 흔들리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건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찌라도 여덟번 일어난다’는 진리의 말씀이 도피성으로 내게 계시기 때문이리라. 기도: 도피성되시어 감사하신 주님,그 주님으로 인해 정죄에서 벗어나 자유얻고 구원얻은 감격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