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5:1-10] 1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2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면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앞에서 그의 죄에 따라 수를 맞추어 때리게 하라 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4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7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8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 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10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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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귀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연약한 여자와 아이들을 보호하시는 규례룰 만드셨고 교회안에서도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라 하십니다. 팬데믹으로 가정들 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람들의 관계가 단절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극단적인 결단으로 생명을 끊는 자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 주위를 돌아봅니다. 연약한 과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소개하며 그분의 도움의 손길의 도구로 쓰임받는 자가 되어야 겠습니다. 주님,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주시고 저에게 이웃들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웃과의 관계에게 풍성하신 은혜와 사랑을 경험허게 도와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아멘.
[시8:3-4]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오늘의 묵상 말씀과 사모님의 QT 나눔을 읽으며 시편 말씀이 떠올랐다. 죄로 얼룩진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예쁜 구석 하나없는 우리를 안아주시고, 위로하시고, 세워주시는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그 놀랍도록 크신 분이 먼지같은 우리를 얼마나 정성껏 세심하게 돌보시는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나는 여전히 이해할수 없다.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분의 말씀 앞에 ‘왜 나를 사랑 하시나요?’ 주님께 던진 나의 첫 질문은 여전히 나의 존재로는 감히 이해할수 없다. 우리에게 보여주신 아름다운 그분의 마음과 자상한 그사랑을 닮아가고 싶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신 사랑에 비하면 온전하지 못한 사랑이지만 그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는동안 주님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세 가지 중요한 법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죄인의 인권, 2) 동물의 보호, 3) 가계의 보존에 관한 것입니다. 첫번째 죄인이라도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아닐 경우 인간의 존엄을 짖밟지 말 것을 명합니다. 당시 일반 죄는 죄의 경중을 따라 태형을 받았는데 최고의 태형을 태장 사십 대 였습니다. 사십 대로 한정한 이유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최고치가 태장 사십 대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39대까지만 태형을 가하는 법이 제정된 것은 신명기때문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정하셨습니다. 벌을 받다가 비참하게 맞아 죽지 않도록 인권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사려를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서신서에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3번씩이나 맞았다고 간증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태형으로 고문 당하다가 3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두번째 하나님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사랑하십니다. 4절에 보면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적어도 동물의 생존은 보장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지혜롭게 잘 다스릴 때 그 모든 유익과 혜택은 사람이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망가뜨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번째는 가계의 보존입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생소한 법입니다. 하지만 속뜻을 알면 왜 하나님께서 이런 법을 만드셨는지 이해가 갑니다. 형제가 사별할 경우 형제의 아내를 취하는 것을 형사취수라고 하고 히브리식으로는 고엘이라고 합니다. 이 제도와 깊이 연관이 있는 성경에 대표적인 이야기는 유다와 다말의 관계이며, 룻과 보아스입니다. 특히 룻의 이야기는 형사취수의 좋은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수취수를 명하신 이유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1) 가장 중요한 것은 언약의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언약의 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 축복의 클라이막스는 언약의 자손에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의 출현입니다. 2) 자녀없이 혼자 살아야 하는 여인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당시 고아와 과부는 가장 비천한 계층이었습니다. 자식없이 과부가 되면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이 되어 기본 생계 조차 불가능하게 됩니다. 형제가 죽었다고 메몰차게 남남이 되지 않고 한 인간을 끝까지 보호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3) 형제들에게 배분된 선조 때부터의 재산(땅, land이나 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식없이 형제가 죽게 되면 그 재산은 과부에게 돌아가게 되며 혹여 과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선조로부터 내려온 재산은 끊어지게 됩니다. 그럼 여인이 재산을 관리하며 살 수 있지 않은가 라고 말할 수 있으나 유대인은 유목민으로 당시 여인이 혼자 가축과 땅을 관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단, 형사취수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형의 사부인을 취수하려면 형제는 반드시 미혼이거나 사별한 경우이어야 합니다. 두번째는 강제가 아닙니다. 원하지 않으면 형사취수를 거부할 수 있는 거부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사취수를 허락하신 이유 중 중요한 또 하나의 메세지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끝까지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개념이 많이 희석되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적지 않게 현대인으로 살면서 나 중심의 사고에서 공동체적 사고를 갖는 것에 적지 않은 어색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미쳐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기시고 배려하시는 것을 보면서 주님의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더 깨닫게 됩니다. - 나는 인간의 존엄함에 대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 나는 공동체에 어떤 존재라고 생각합니까? 사랑의 주님, 우리가 살고 있은 이 세상에 깊은 배려와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 세상에도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이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범죄자가 생겨 처벌 받게 된다해도 그 생명은 존중해야 된다. 또 계대결혼제도를 통해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믿음의 가문을 잇는 규례이다. 묵상&적용: 악인에 대한 얼핏 가벼운 듯한 처벌은 하나님께 속한 생명에 대한 존중의 뜻으로 행해졌던 것 같다. 형사취수라는 현대시대에 보면 비윤리적으로 보일 수 있고 꺼려지는 이 제도는 당시 이제 막 약속의 땅에서 정복전쟁한 믿음의 공동체가 전쟁으로나 정착의 어려움으로 가장인 남편이 죽을 경우 종족의 생존을 잇기가 위태로울 수 있는 때의 상황에서 필수불가결의 제도일 수 있다. 또한 고대 사회에 남편과 자식이 없으면 생계자체가 불가능할 여인들에 대한 인권이 존중된 제도인 것 같다. 그렇다고 그 것을 따르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게 하는 제도는 아닌 것 같아 합당해 보인다. (룻기 참고) 말씀을 찬찬히 묵상하다보면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시며 인자하시고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한 분이시고 끝까지 자기 백성을 책임지시고 아끼시는 분이심을 볼 수 있다. 인류와 동식물...자신의 피조세계 전체를 정말 사랑하시는 분이심이 분명하다. 그 중에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을 너무 사랑하시고 자신을 따르는 백성을 아끼시고 복을 주시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도록 간섭하시는 분이심이 분명하다. 나와 가정 그리고 믿음의 교회 공동체에 주시는 과분한 사랑과 돌보심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듯이 ...앞으로 어떠한 환경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명의 완수까지 이 생의 마지막까지 사랑과 성실로 인도하실 주님을 의지하고 최선을 다하고 감사한 하루하루가 되어야겠다. 기도: 나의 어떠한 형편에서도 신실함으로 인도하실 주님, 주님만이 나의 산성이시고 방패이시고 도움이심을 믿습니다. 자신의 백성을 책임지시고 사용하시며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